본문 바로가기

주모도리가 알려주는 경제를 아라보자/주모도리의 책!책!책! 을 읽었는데용

악의 없는 악인 -악의 평범성,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728x90

- 저는 그저 승인했을 뿐입니다. 제가 죽인 게 아닙니다, 저는 그저 '지시'를 따른 것뿐입니다.-

- 홀로코스트 전범 오토 아돌프 아이히만 -

 


아돌프 아이히만

 

악(惡)의 사전적 의미는 '인간의 도덕적 기준에 어긋나 나쁨. 또는 그런 것.'입니다. 악을 머릿속에 떠오르면 연쇄살인범 또는 사이코패스처럼 인간의 도덕적 기준을 아득히 초월한 순수 악과 같은 무서운 이미지가 먼저 머릿속에 떠오릅니다. 

 

더 나아가 악은 우리가 상상 가능한 무서운 모습으로 상상도 하지 못할 일들을 거리낌 없이 행하는 존재를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하지만 진정 악인은 우리와 다른 도덕적 기준을 가지고 있기에 악인이 되었을까요?

 

그들을 유혹하는 뱀 

미국의 정치학자이자 유대인이었던 한나 아렌트는 수많은 유대인들을 학살한 홀로코스트를 수행하여 재판을 받고 있던 아돌프 아이히만을 다룬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책을 쓰고는 부제를 '악의 평범성'이라 붙였습니다.

 

악의 평범성이라니! 더군다나 이 책은 그녀의 민족인 유대인 학살을 자행한 전범에 관한 책입니다. 왜 악이라는 무시무시한 단어무채색에 가까운 평범함이라는 수식어를 붙였을까요?

 

그녀 또한 처음부터 이런 생각을 가진 것은 아닌 듯합니다. 그녀가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바로 아돌프 아이히만의 실제 모습을 봤기 때문입니다. 아돌프 아이히만은 독일의 패배 후 아르헨티나에서 망명생활을 하다가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에 체포되어 예루살렘에서 재판을 받게 됩니다. 모사드의 스파이는 아이히만을 체포하기 전까지 그를 강인한 게르만 전사의 모습으로 상상하였지만, 실제로 마주한 그는 지극히 평범해 보이고 기가 약해 보이는 인물이었다고 합니다. 

 

모사드가 생각했던 아이히만의 모습은 이 모습이 아닐까?

하지만 재판에서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 저지른 악행을 하나하나 밝혔습니다. 아렌트는 악이라는 강렬한 단어와 평범함이라는 무채색의 단어를 조합하여 악에 대한 고정관념을 뒤흔들기 위함이었습니다. 책 속에서 그녀는 아돌프 아이히만을 '유대 민족에 대한 증오나 유럽 대륙에 의한 공격심이 아니라, 그저 단순히 출세하기 위해서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고자 한 인물'로 정의했습니다.

 

그녀는 악은 시스템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정의했습니다. 독일의 유대인 학살 정책은 매우 정교한 시스템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유대인 학살 정책을 시작하기 전 국민들에게 유대인의 부정적 이미지를 심어 주었고, 개개인에게 유대인 학살 정책의 아주 작은 부분을 수행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잘 수행하였을 경우 충분한 보상, 수행하지 않았을 경우는 처벌을 가함으로써 독일인들이 시스템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게 만들었고 그 결과 독일 국민은 홀로코스트라는 최악의 시스템을 거리낌 없이 수행하는 악인이 되었습니다. 

그 당시 아픔을 기록한 안나 프랭크의 일기

 

그리고 아돌프 아이히만은 이러한 피라미드 같은 시스템의 꼭대기 위에서 유대인들의 목숨을 빼앗기를 희망하는 문서에 아무런 의식 없이 '서명'을 하였습니다. 이 처럼 스스로 생각하기를 포기한 사람은 누구나 아이히만이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실제로 아이히만 또한 재판에서 자신의 잘못은 인정하면서도 "나는 시스템을 따르기만 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생각 없이 시스템을 수용한 개인은 잘못이 없는 걸까요? 프랑스의 한 청년이 레지스탕스로 오해받아 감옥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는 재판을 받던 도중에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라며 스스로를 변호하였습니다. 그러자 감방에 들어가 있던 레지스탕스는 "사랑하는 조국이 이렇게 어려운데 아무 일도 안 했으니 너는 죽어 마땅하다"라고 얘기했습니다. 

 

주제와는 조금 동떨어진 얘기이지만,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시스템을 무조건 적으로 수용하지 않고 스스로 생각하며 판단하는 것은 우리가 인간으로 살지, 악인으로 살지를 결정할 것입니다. 현재 우리는 양한 시스템 속에서 생각 없이 많은 사람들이 선택, 수용한다는 이유로 자신도 같은 선택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우리 사회의 경향은 한나 아렌트가 정의한 악에 의식 없이 가까워지는 것은 아닐지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728x90